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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대학 졸업하고 "동대문에서 풀빵 장사하는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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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7시경 동대문운동장 주위 포장마차는 불야성입니다.

지난 수요일 장애인이 사는 집수리 사전답사 끝내고 동대문에 있는 구민회관에 잠시 들렸다가 집으로 귀가 할려고 동대문상가를 빠져 나오는데 년말이라선지 동대문은 늦은 저녁시간인데 사람들로 인산인해였습니다.
발 디딜틈없는 동대문은 인도에 자리잡은 포장마차의 불빛은 낯인지 밤인지 구분이 안 가고, 가득 쌓아 놓은 갖가지 음식냄새가 나를 유혹하는데..
평소때는 포장마차를 쳐다 보지도 않았는데, 오늘따라 풍겨 나오는 음식냄새가 나의 시장기를 제촉하더군요.

길을 지나다 무심코 내가 시선을 멈춘 곳은 국화빵 굽는 포장마차 앞이였습니다.
나도 모르게 국화빵 파는 포장마차로 불쑥 들어 갔더니, 낯 익은 얼굴이 나를 반기네요.
"아줌마, 여긴 왠 웬 일이세요."
"넌, 여기서 뭘 하니?"
"국화빵 구워서 팔잖아요."
"응, 그렇구나. 대학은 졸업했니?"
"녜, 졸업하고 중소기업에 취직했었는데 경기가 좋지 않는지 월급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때려 치우고 선배가 하던 포장마차에서 동업으로 장사해요"
"그랬구나, 고생은 되겠지만 어쩌면 이 장사도 괜찮겠다 그지"

이 청년과의 만남은 몇년 전부터 입니다.
사흘이 멀다 않고 도서관에 들려서 도서를 대출해 가는 학생이였고, 이 청년이 대출해 가는 도서는 주로 경제, 미설러니류였는데 도서선정이 예사롭지 않던 학생이였습니다.
대학학비도 부모에게 받아서 다니는게 아니라 알바이트해서 학비를 마련해서 대학을 다니던 학생이였습니다.
어떤때는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서 휴학해 사면서 억척스럽게 일해 가면서 대학을 졸업한 학생이였데 결국은 제대로 된 직장 구하지 못하고 동대문 포장마차에서 국화빵을 팔고 있더군요.

평소에는 말이 없는데, 도서관에서 자주 만나면서 우린 자연스레 친해졌고 인생에 대한 이야기도 서슴없이 나누었던 청년이였습니다.
오랜만에 해후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렵고 힘 들지만 몇년 고생해서 돈 모아서 내 가개 하나 차리는게 꿈인데, 이 자리에서 언제까지 장사 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왜."
"동대문운동장이 헐리면 여기에서 장사하는 포장마차는 자리를 비워야 한대요."
"지나다 보니 동대문지하 상가도 난리더라. 여기 저기 벽보가 붙어있던데"
"스포츠상가도 그 동안 터 닦으며 공 들어 온 일터인데, 하루아침에 쫒겨난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그들은 그 동안 돈이라도 많이 벌었잖아요. 주위에 신축상가가 많으니 옮겨 갈 자리라도 있지만, 우리는 쫒겨나면 끝나는 건데.."
하면서 끝내 말을 잇지 못하더군요.
"여태까지도 잘 해 왔잖아..넌, 충분히 할 수 있을꺼야. 화이팅!!!"
잠시 그 청년과 이야기를 나누다 나는 봉투에 풀빵봉지를 건네 받으면 그 자리를 떠나야 했습니다.

대학 다니던 시절 그 청년은 식당써빙, 설겆이 그리고 동대문에서 풀빵장사 도우미까지 해 가면서 어렵게 대학을 졸업하는 과정을 쭉 지켜 봤는데, 평소에는 말이 없었지만 대학졸업후 좋은직장 갖겠다고 꿈에 부풀어 있었는데..
결국은 또 다시 선배풀빵장사는 포장마차에서 동업이라고 나에게는 말을 했지만, 결국은 선배포장마차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 같더군요.
계속 되는 불경기로 취직의 문은 좁고, 이 청년처럼 거리에 내 몰린 청년이 한 둘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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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향하던 길에 지하상가 벽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포스터 몇장을 찍으면서, 풀빵장사하는 청년의 말이 생각나더군요.
"지하상가는 얼울함을 호소하는 벽보 붙일 자리라도 있지만, 포장마차하는 사람들은 벽보 붙이고 싶어도 붙일 장소가 없어요"
하던 말이요.

동대문운동장을 헐고 그 자리에 공원이 생기는 것은 좋은데, 수년간 가족의 삶터를 꾸미던 상인들은 또 어디로 떠날려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