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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나이 53에 결혼 앞두고 뇌수막에 걸린 남자의 기구한 운명.

추석맞이 릴레이행사때문에 아침부터 외출했다가 관내 결식아동 밑반찬 나누어 주는 날이라 잠시 집에 들렸는데, 마음이 바빠 현관문도 채 닫지 않은채 결식 아동집에 전화를 거는데 불쑥 중년남자가 들어오더군요.
나는 깜짝 놀래서 "누구세요"라고 했더니..
예전 이웃에 살던 아저씨였습니다.
이웃아저씨는 "저예요"하면서 거실에 법썩 주저않으시더군요.

"어머나, 아저씨였구나. 요즘 어떻게 지내셨어요."라는 물었더니.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눈물부터 글썽이더군요.
"아니, 왜요. 무슨일이라도 있었나요."
"말도 마세요.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지0어머니께 하소연이라도 할려고 왔습니다."
"어머, 그러세요. 참, 어머니는 잘 계시나요."
"우리어머니 생각하면 눈물이 나와서 무슨말부터 해야할 지 모르겠어요."라며 머리에 쓰고 있던 모자를 벗으며 몇년간 보지 못했던 시절을 시작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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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우리 이웃에 살때, 장가도 못간채 모기업체 사장 운전기사를 하면서 90이 넘은 노모와 함께  사시던 분이였습니다.
효심이 어찌나 지극한지 휴일이면 어머니 모시고 나들이와 쇼핑가는 것이 유일한 낙이였던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몇년 못 본사이 엄청난 일이 벌어졌더군요.

53세에 조선족과 선보고 결혼한 날잡고 다른지역에 신혼집까지 구하여 꿈에 부풀었는데..
결혼식 며칠 앞두고 머리가 몹시 아파 병원에 갔더니 "뇌수막염'으로 얼마 살지 못한다는 의사의 진단에 4차례 수술을 받고 1년간 병원생활을 끝내고 신혼집으로 갔더니 결혼을 약속했던 여자는 전세금 빼내 자취를 감추었고..
어머니께서 거처하시던 집은 텅비어 이웃에 물어보니 년세가 많아 돌봐 줄 사람이 없어 동사무소에서 양로원으로 모셨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나이 아흔이 넘어도 기억력이 뚜렷하고 걸음도 빠르고 건강하셨는데..
처음 수술 받을 당시 아들 병간호 하시던 어머니는 아픈 아들때문에 충격받아 쓰러지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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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년간 일어났던 엄청난 사건들을 이야기하다가 옷을 져치고 목부분을 보여주면서, 머리에서 요도까지 철심을 박아 물을 뽑아 낸다고 하더군요.
뇌수막염이 이렇게 무서우 병일 줄이야..
지금도 물이 막힐까 병원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병원비가 없어 퇴원하여 집에서 혼자 생활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더 기가 막히는 것은 아저씨가 기거하는 집은 재개발로 묶여 곧 헐리게 된다고 합니다.
집을 비워야 하는데, 돈이 없어 이사도 못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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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는 이 집에서 7년정도 늙은 노모와 함께 사셨는데, 결혼 할 여자가 노모를 모시지 못한다고 하여 어쩔 수없이 아흔이 넘은 노모만 남겨둔 채 신혼집으로 주소를 옮겼답니다.
신혼집은 살아보지도 못한채 날라가버리고 노모는 양로원으로 거처를 옮겨서 7년간 살던 집은 주민등록이 외지로 되어있어 이주비도 못 받는다고 합니다.

재개발사무실에서는 당장 집을 비워달라고 성화지만 돈이 없어 갈데가 없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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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먹고 살기위해서 일을 해야하는데, 뇌수막염수술 후유증으로 실명위기까지 놓인 상태라 아무런 일도 할수가 없다며 이야기 나누는 내내 눈물을 글썽이더군요.

7년간 살았던 집, 재개발로 세입자에게 이주비를 주는데 아저씨는 주소지가 현재 사는 집으로 되어있지 않아 이주비도 못 받게 되었다며 "7년을 넘게 실제로 거주했는데 이주비를 못받고 이사를 해야 하는 아저씨는 넘 억울하다"며 구청에 탄원서를 낼려고 동네주민들에게 싸인 받으러 다니신답니다.

다음 스케줄이 바빠 외출해야 하기에 아저씨와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아저씨의 딱한 사정을 듣다보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군요.
평생 남에게 싫은 말한번 하지 못히고 산 아저씨.
늙은 노모때문에 장가도 못간 아저씨.
뒤늦은 나이에 장가 간다고 너무 좋았다는 아저씨.
내가 뭐라고 해야 아저씨께 위안이 될지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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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이야기 나누던 중 아저씨는 핸드폰 배경으로 담은 어머니사진을 보느라 계속 핸드폰을 만지더군요.
그리고, 당신몸도 아파 언제 죽을 지 모르는데.
"병원에서 나와 어머니를 찾았더니 우리어머니는 바보가 되었어요. 걷지도 못한채 그냥 웃기만 하셔요"라며 "우리어머니가 너무 불쌍해요.'라며 펑펑 울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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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와 헤어진 후 일부러 아저씨가 사는 곳으로 가 봤습니다.
주위는 이미 이사를 한 상태였고 아저씨집은 대문은 굳게 닫힌채 썰렁하더군요.

이제 곧 추석이 닥아옵니다.
"더고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하여라"하였지만 이번 추석은 경기가 좋지않아 모두들 어렵다고 난리들입니다.
세상은 살기가 여려워 몸이 건강한 사람도 살기 힘든데, 나이 오십중반에 든 병든 아저씨.
병원비가 없어 죽을병에 걸렸어도 병원에도 못가는 아저씨.
아저씨는 아픈 몸보다 이번 겨울 당장 추위를 피할 방 한칸 구할 돈이 없어 싸우는 중입니다.
아저씨는 많은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7년간 실제로 살았던 집, 재개발로 곧 헐리게 되었는데 남들이 다 받는 이주비 몇푼에 목숨 걸고 있습니다.
아저씨는 나와 헤어지면서 "돈없는 사람은 장가도 못가는 세상, 나도 어머님만 계시지 않으면 그냥 이 자리에서 죽었으면 합니다."라는 말이 계속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부디, 재개발사무실과 잘 타협이 되어 작은 방 보증금이라도 받아내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