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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고 싶다

낙엽지는 "장충단 공원"

올 가을은 유난히 바빠서 낙엽이 지는지도 깨닫지 못하고 지나치다가, 어제 동국대역 부근에 볼일이 있어 나갔다가 남산자락입구인 장충단공원을 무심히 쳐다보니..

지는 노을에 단풍이 곱게 물 들었더군요.

나도 모르게 단풍에 이끌려 모처럼 가을여자가 되었습니다.

서울도심에 우뚝 선 남산은 서울의 상징이자 많은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고, 서울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산이자, 안식처입니다.

내가 사는 곳과 가까워서 철마다 이어지는 행사로 자주 찾는 곳이지만, 정작 사진에 담을수있는 여유가 없었는데, 오늘은 혼자서 여유롭게 장충단공원 가을모습을 담아봤습니다.


 낙엽이 내 얼굴만해요..오동나무잎인 것 같은데..

 




 장충단공원에 자리잡은 "장충단비"가 보이네요.

1895년 8월 20일, 명성황후가 일본의 자객들에 의해 경복궁에서 시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궁내부 대신 이경직, 시위대장 홍계훈 등 많은 장병들이 일본인들을 물리치다가 죽음을 맞았다. 이에 고종 황제는 그들의 영령을 위로하고자 1900년 11월 장충단이라는 사당을 지었는데, 그 자리가 지금의 신라호텔 영빈관 자리에 있던 것을 1969년 장충단에 세워졌던 비가 현재의 자리로 옮겨서 서울 중구에서는 매년 10월 초에 제를 올립니다.

 


장충단 비



 비둘기가 나무가지를 흔들어 놓았나 봐요..

 나무가지마다 비둘기의 안식처네요.




 장충단공원 일대는 장충단비, 수표교, 승정전, 관성묘, 와룡묘 등 문화재를 비롯하여 3·1운동 기념비,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 만해 한용운 시비와 유관순, 이준열사, 김용환 선생 동상 등이 있는 항일운동과 관련된 애국충정이 깃든 문화재가 많은데 사진에 보이는 곳은 수표교입니다.

 장충단 공원 입구에 놓여있는 돌다리로, 원래는 청계천 2가에 있었으나 1959년 청계천 복개공사를 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는데, 장충단공원의 명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화강암을 짜맞추어 만들어 놓은 것으로, 아래의 돌기둥이 특이하게도 2단을 이루고 있으며, 그 중 윗단의 돌은 모서리를 물의 흐름과 마주하게 하여 물의 저항을 덜 받도록 하였고...

난간은 연꽃봉오리, 연잎 등을 주제로 설계해 놓았는데 그 조각들이 매우 아름답네요.

 조선 세종 2년(1420)에 세운 다리로, 당시에는 이곳에 소시장이 있었다 하여 ‘마전교 ’라 불렸으며, 세종 23년(1441) 수표(보물 제838호)를 만들어 이 다리 옆에 세우고 청계천의 물높이를 재어 홍수에 대비하도록 하였고, 영조 36년(1760) 다리를 수리하면서 돌기둥에 ‘경(庚) ·진(辰) ·지(地) ·평(平)’이라는 글씨를 새겨두어 4단계의 물높이를 측정하도록 하였고, 이 때부터 수중주석표(水中柱石標)라는 말이 생겨나 ‘수표교 ’라 부르게 되었답니다.


 물길을 건너는 통로로서 뿐만 아니라 홍수의 조절을 위해 수량을 재는 역할을 했던 중요한 다리로, 조선조 500여년 동안 여러 차례의 보수를 거쳐 왔답니다.

다리 옆에 서 있던 수표는 다리를 이곳으로 옮길 때 함께 옮겨왔다가 1973년 세종대왕 기념관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습니다.

이번 청계천복원때 청계천으로 옮긴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옮기기가 쉽지 않았는지 현재 장충단공원 입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장충단공원을 돌아서 나오는데 어디서 틀어놓았는지 "배호"의 "안개 낀 장충단 공원"노래가 구슬프게 들려오네요..


안개 낀 장충단 공원 누구를 찾아왔나
낙엽송 고목을 말없이 쓸어안고
울고만 있을까...

.....................
가버린 그 사람이 남긴 발자취
낙엽만 쌓여 있는데
외로움을 달래 가면서
떠나가는 장충단 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