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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고 싶다

남산 정상에서 본 봉수대.

남산은 내가 사는 곳에 가까워서 이런 저런일로 자주 찾는 곳이다.
계절마다 갖가지 표정으로 서울시민의 안식처 남산.
차거운 겨울남산은 매서운 바람으로 을씨년스럽지만, 사계절 등산객이 끊이지 않는다.

남산속에는 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지만, 오늘은 남산정상에 있는 풍경을 담아봤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남산 정상 팔각정 뒷쪽에는 봉수대가 있다.

2년전만 해도 신년초에 해맞이 행사와 더불어 봉수대에 횃불 붙여 한해를 알리는 행사를 했지만 작년부터 8.15광복절에 봉수대에 햇불 붙이는 행사를 하는 관계로 올해는 남산에서 해돋이 행사 끝나고 봉수대를 돌아 봤다.



남산 정상을 올라가면 봉수대, 그렇다면 봉수는 언제, 어떻게 사용되었던 것일까?

봉수는 국경 지대에 외세가 쳐들어왔을 때 임금이 있는 중앙과 주민들에게 이 사실을 신속히 알리며, 위기 상황에 대처하고 극복하려는 목적으로 이용됐다. 이러한 군사상의 신호는 기본적으로 연기와 불을 통해 전달됐다. 사방이 환한 낮에는 연기를 피우고, 밤에는 연대에 불을 피워서 신호를 전달했다.

빠르고 정확한 신호 전달을 위해 봉수대는 지방 5개 처에서부터 서울의 남산(목멱산) 사이를 약 수십 리(1 리는 약 0.393km) 간격으로 잇고 있었다. 그리고 각각의 봉수대에는 불을 피우는 연대가 다섯 개씩 있어서 불이나 연기의 개수에 따라 서로 다른 군사신호를 전달하도록 약속했다. 봉수대에서 피우는 불과 연기의 개수가 늘수록 국가 안보가 더 많이 위협받고 있음을 의미했다.

이와 동시에 봉수를 관리하는 관원 중 한 명은 다음 봉수대까지 달려가 그 상황을 전했다. 이렇게 해서 전국 어느 지역의 봉수대로부터 시작된 봉화든지 간에 약 12시간이면 서울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봉수 신호가 집결하는 곳은 서울 남산의 남산 봉수대였다. 목멱산 봉수대 또는 경(京)봉수대로도 불리는 남산 봉수대는 5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사용된 중앙봉수대다.


봉수는 실외에서 사람이 직접 피우는 불이나 연기에 의존했기
때문에 전달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어려움을 극복해야 했다. 문제는 불/연기를 피우는 사람이나 불/연기를 피울 때의 기상 상황이 한결같지 않을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봉수를 관리하는 관원이 자신의 직무를 게을리 하거나 거짓 봉화를 올렸을 때는 엄중히 죄를 물었다. 또한 날씨 상태가 좋지 않을 때에는 봉수 신호 외에 다른 방법으로 위험을 알렸다. 주민들과 군사들에게는 대포나 나팔소리로 상황의 위급함을 알렸다.

이와 동시에 봉수를 관리하는 관원 중 한 명은 다음 봉수대까지 달려가 그 상황을 전했다. 이렇게 해서 전국 어느 지역의 봉수대로부터 시작된 봉화든지 간에 약 12시간이면 서울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봉수 신호가 집결하는 곳은 서울 남산의 남산 봉수대였다. 목멱산 봉수대 또는 경(京)봉수대로도 불리는 남산 봉수대는 5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사용된 중앙봉수대다.

남산 봉수대는 동쪽에서 서쪽 방향으로 다섯 군데에 설치돼 있었다고 하나 정확한 위치는 규명되지 않고 있다. 현재 복원된 남산 봉수대는 그 중 1개소를 복원한 것으로, 청구도 등의 관련 자료를 근거로 고증해 지금의 위치를 결정한 것이라 한다.

서울시는 ‘남산제모습찾기운동’의 일환으로 1992년 남산 봉수대 복원공사를 착공, 1993년 7월 16일 준공하였다.

남산 위에는 원래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하여 5개의 봉수대가 있었는데, 이 봉수대는 <청구도(靑丘圖)>등 관련자료를 검토하여 현위치에 1개소를 복원한 것이다.



남산 정상으로 올라가다 보면 군데 군데 성곽도 보인다.

 서울성곽은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서울을 옮긴 후 전쟁 때에 대비하고, 평시에는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거나 도적 방지를 위해 쌓은 시설이다. 높이 12m의 돌로 쌓은 서울성곽은 둘레가 5만9500척(약18km)으로 서울의 북악산·인왕산·남산·낙산의 능선을 잇고 있는데 그 모양은 타원형에 가깝다.



남산성각주변에 누가 쌓아 놓았는지 돌탑이 보이네요.

아마도 돌 하나 하나에 소원을 담으며 정성스럽게 쌓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