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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만약, 내딸이 서양사위를 데리고 온다면....

오후가 되어 뜻밖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예전 이웃하며 살던 분인데 한동안 보이지 않길래 그런가 보다 잊고 살았는데.
"아직도 그 집에 사시나 봐요."
"녜, 잠시 다른 곳에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어요."
"그랬구나, 혹시나 해서 전화했는데."
"정말 오랜만이네요. 그 동안 잘 지내셨어요."
"네, 잘 지냈습니다. 그 집 딸도 결혼 할 나이가 됐지요."
"녜, 결혼 나이가 되었는데도 결혼 할 생각이 없는지.. 아직 결혼 시키지 않았어요. 그 집 딸은 결혼했나요."
"말도 마세요. 우리 딸때문에 너무 속상해서 어디 하소연할 때는 없고.. 갑짜기 0아엄마가 생각나더군요."
"그러세요. 그런데,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글쎄요. 뭐라고 해나 하나.. 우리 딸이 미국0과 결혼하겠데요. 없는 돈 끌어다가 유학까지 보냈더니.. 이럴 수가 있나요."
"어머, 그러세요. 요즘은 외국인과 결혼하는 사람이 꽤 많더군요. 그런데 왜요."
"서양인과 결혼 한다는데 0아엄마는 아무렇지도 않나요."
"글쎄요. 직접 당해보지 않아서 깊이 생각하지 못했는데요."
"미국에는 한국유학생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내 딸의 결혼상대자가 미국0이란 말이예요. 저도 국제결혼을 남의 일처럼 생각했는데 막상, 내딸이 신랑감이라고 미국0을 데리고 왔는데 기절할 뻔했어요.. 아이아빠는 지금 충격먹어서 병원에 입원했어요."

미국유학 간 딸이 미국사람과 결혼한다고 어찌나 노발대발하는지 뭐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저 나는 들을 수밖에 없더군요.
그렇게 1시간이상을 그 분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미국인이 아니라 미국ㄴ이라는 단어로 난리입니다.
오늘 전화온 아줌마는 자식교육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분이였고, 음악전공인 딸 뒷바라지한다고 집까지 팔아가면서 유학시기더니..
그렇게 사랑한 딸이 서양인과 결혼한다는 충격에 아이아빠는 병원입원까지 했다니 마음이 아프네요.

우리신랑 형제는 6남매라서 조카가 서른명이 넘습니다.
또한, 우리집만 한국에 살고 다른형제들은 모두 외국에 살고 있지만, 외국인과 결혼한 조카가 한명도 없어서 생각조차 해 본적이 없었는데 전화를 받고나니 남의 일로만 생각할 문제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구요.

가끔, T.V에서 서양인과 결혼한 커플을 봐왔고 한옥마을에 가면 외국인과 다니는 커플을 봤지만 내 주위에 국제결혼한 커플이 없어 심각하게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
딸이 신랑감이라고 서양인을 데리고 왔다고 노발대발하는 아줌마의 전화를 받고보니 어학연수와 외국유학이 당연하다는 세상에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서 국제시대라고 하지만, 길거리에서 서양인들을 만나면 왠지 언어도 통하지 않고 저에게는 낯설은 이방인으로만 생각해 왔구요.
이런 생각을 젊은이들에게 하면 시대감각이 떨어지는 노친네라고 하겠지만 아직도,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아왔습니다.
또한, 내 자식도 한국인과 결혼한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구요.

그런데, 내 딸이 서양인과 결혼을 한다고 하면 나는 어쩌지..
현재, 우리딸도 영국에 체류중인데 갑짜기 초초해지네요.

오래전, 신문에서 "국제결혼은 더 이상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통계청이 국제결혼 통계를 처음 작성한 90년, 그 비율은 겨우 1.2%였는데 요즘들어 10%를 넘었다는 기사는 봤지만 막상 내주위에서 국제결혼을 할줄이야 생각도 못한지라 당황스럽네요..
전화를 끊고난 후 저도 잠시 생각해 봤네요.
"만약, 내 딸이 언어도 다르고 생김새도 전혀 다른 서양인과 사위를 데리고 나타나면 나의 기분은 어떨까?" 저도 당연 반대를 하겠지요.
아니,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