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적십자 봉사

다리가 아파 거동도 못하는데, 어디로 갈꺼나..

며칠전부터 우리집에 계속 전화가 오는 할머니가 계십니다.
지난주는 내가 바빠서 할머니전화를 받고도 찾아 뵙지 못했는데, 오늘은 아침녁에 시간을 내어서 할머니댁을 찾았습니다.
"할머니 저 왔어요.. 저도 계속 바쁜 일이 겹쳐서 이제 왔어요."
"그래, 00엄마도 바쁜 줄 아는데, 재재발사무실에서 집 비워라고 연락이 오니 마음이 답답해서 죽을 맛이야."
"그랬군요.. 이사 할 곳은 정하셨어요."
"이사 할 곳을 정했으면 이러고 있겠는가.. 다리가 아파 집 구하러 다니지도 못하고.. 그저 전화로 이곳 저곳 알아보는 중인데, 보증금 2천만원으로는 얻을 집이 없어."
"그렇구나.. 그럼 어쩌나요."
"글쎄 말이야.. 도대체 재개발이 뭔지. 요즘 들어 서글픈 생각만 들어."
그러면서 할머니는 커다란 봉투 한개를 보이더군요.
"며칠전, 법원에서 이런 것이 날라 왔어. 지방법원이라는데.. 가슴이 떨려서 글씨가 눈에 들어오지 않어. 00엄마가 읽어보고 무슨 말인지 알려주랴.."


할머니께서 내어 놓은 봉투에는 이주명령서가 들어있었습니다.
평생 법원한번 가 보지 않은 할머니께서는 법원에서 두툼한 봉투가 날라 왔으니 얼마나 놀랬겠어요.
"할머니, 서류봉투는 별 것 아니예요. 그 보다 더 걱정은 할머니께서 이사할 곳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해요. 이사할 곳부터 정하셔야 하는데.. 어쩌나요."
"30대에 서울로 이사와서 평생을 이 동네에서 살아 왔는데, 이 동네는 내가 이사 할 집도 없고, 지금 보증금으로는 얻을 집이 없어.. 부동산에 전화를 해 봤더니 전세가 없데.."
"정말 큰 일이네요. 그럼 어쩌나요."
"글쎄말이야.. 어디로 가야할지 앞이 캄캄하다네."


할머니께서는 자식도 없이 평생을 홀로 사시는 분인데, 다리가 아파 외출도 못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외출할 일이 있으면 이웃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분입니다.
집안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저의 집에 전화를 걸어 부탁을 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는 지금 당장 집을 비워야 합니다.
할머니가 사시는 곳은 지금 도심재개발로 철거가 한창 이루어지는 곳이기때문입니다.
할머니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할머니의 유일한 친구인 강아쥐 두마리는 할머니곁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내 몸하나 쉴 곳도 마련하지 못했는데, 강쥐 두마리는 어쩌누..요즘들어 무슨 낌새를 눈치챘는지 내 무릎에서 떠나질 않네."
"이사하실때 강쥐도 데리고 가야죠."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지난 번 살던집에서 키우던 강쥐도 이 집으로 이사하면서 다른 곳으로 보냈는데.. 다시는 강쥐 키우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는데, 길가에 버려진 강쥐가 불쌍해서 키운것이 내 죄지 뭐.. 세 사는 내가 할말이 뭐가 있겠노."라며 울먹이시더군요.
"할머니, 할머니께서는 지금 당장 할머니 거처할 곳이 더 중요하지 강쥐는 집 구한 후 다시 생각해 보자구요."
"알았어. 아무래도 경기도 쪽으로 알아 봐야겠어."
"경기도쪽에는 싼 방이 있데요."
"전화로 물어봤더니 이 돈으로 지하방 정도는 구할 수가 있대.. 그런데, 낯선 곳에서 어떻게 살아. 다리가 아파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데.. 여기서는 00엄마에게 도움이라도 받을 수가 있잖아."
"그러게 말이예요."
"요즘들어 길 나서기가 무서워. 외출했다가 집으로 돌아온느데 날마다 다닌 길도 깜박한다니까."
"녜엣!! 정말 큰일이다."


할머니께서는 사시는 곳은 지금 철거가 한창입니다.
주위는 이주민들이 이번 가을에 이주를 하여 주위는 텅 비웠습니다.
현재 살고있는 집은 현관만 열면 골목어귀라서 아기 보행기에 의지하여 병원정도는 혼자서 다닙니다.

일찍 결혼하여 자식을 낳지 못하여 시집에서 소박 맞은 후 자리 잡은 곳이 이 동네입니다.
30대에 이 동네로 이사를 와서 평생을 이곳에서 살아서 서울지리도 모른다고 합니다.
이 동네만 벗어나면 죽는 줄 아는 할머니..
그런데, 도심재개발로 할머니는 이 곳에서 살 수가 없습니다.
다리는 점점 아파 걷지도 못하시는 할머니.
그나마, 생활보호자로 선정되어 동사무소 도우미가 가끔 방문하여 도와주는 덕에 그럭 저럭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이제 이 동네를 떠나야 합니다.
도심 곳곳마다 재개발로 할머니가 가진 돈으로는 이사 할 곳이 없습니다.
할머니가 사시는 동네는 왕십리 뉴타운이 지정된 곳과 가까운 곳이여서 작은 돈으로로는 방 구하기가 하늘에 병따기 보다 더 힘든 곳입니다.

이제 날씨도 쌀쌀해져서 이제 곧 겨울한파가 올텐데.. 걱정입니다.
"이번 겨울이라도 이 집에서 살았으면 좋겠는데..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할 생각을 하니 서글퍼서 눈물만 나네. 이제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이 동네에서 살다가 죽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00엄마도 있고."라는 말이 내 마음마저 아파옵니다.

단지 교통좋고 이웃이 좋아서 이 곳을 떠나지 못하고 사신 할머니.
다리가 아파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없는 할머니..
쌀쌀해진느 아침, 할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의 겨울이 먼저 내 마음에 와 있는 것 같으네요.
도대체 도심재개발이 뭔지.. 사람이 살고 싶은 의지마저 꺽어버리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