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행복

다훈증후증 아들때문에 대학다니는 엄마.

며칠전, 다른구에 사는 봉사회 회장님집을 방문했더니 친구분 한분이 계시더군요.
첫만남에 처음에는 서먹했지만 같은 또래라선지 금방 친해지더군요.
아줌마 셋이 모였으니 이런 저런 수다가 무르익어 갈 무렵, 친구분이 "수다떠니 무지 재미있는데, 큰일이네요."
"왜, 큰일이라도 생겼나요."
"시험시간이라 시험공부준비로 해야하고, 우리아들 1학기 마감연주회 있는 날이라서 천안 내려가야 하는데."
내가 보기엔 나이가 나랑 비슷해 보이는데 시험기간이라는 말에 의아해서.
"어머나, 이 나이에 학교 다니세요."
"그렇게 되었어요. 다훈증후증 아들 덕에 대학까지 다니게 되었습니다."
"다훈증후증 아들때문에 대학을 다니다니요."
나도 모르게 의아해서 순간적으로 물으니, 긴한숨을 푹 쉬더니..
"다른사람들은 이나이에 대학다니면 돈이 많아 다니는 줄 알겠지만..말도 마세요. 그 놈때문에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어요."
"그 놈이라니요.."
"우리 둘째 아들이 다훈증후증이예요. 처음에는 부끄러워 말도 꺼내지 못했는데, 지금은 우리아들이 자랑스러워 자랑하고 다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훈증후증아들은 아줌마의 둘째 아들로 대학교 4학년으로 음대에 졸업반으로 플릇을 전공합니다.

태어나서 1년이 지난 어느날, 고열이 심해 병원을 찾았더니 "최선을 다 했지만 어쩔수없다"는 병원의사의 청천벽력같은 선고를 받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건만,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한살배기 자식이 애처러워 서울병원으로 옮겨 목숨을 건졌으나 입원비를 감당못해 퇴원시켜 지방으로 내려갔답니다.
병원에서는 장기입원시켜 지켜보자는 의사의 권유를 무시하고 단지 입원비가 없어 퇴원을 시킨 후, 위급상태가 되면 어쩔 수없어 병원을 수십차례 다녔으나 결국은 다훈증후증이라는 판명을 받고 못난 자식안고 강물에도 뛰어들려고 했으나 큰아들이 눈에 밟혀 차마 죽지 못하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답니다.

아이의 어린시절은 병원과 집을 반복하는 생활이였는데, 어느새 자라서 초등학교 입학시켜야 하는데 일반학교에서는 거절하더랍니다.
아이를 데리고 특수학교 몇번 가 봤지만 차마, 특수학교 입학시키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결국은 동네초등학교 교장선생님께 입학허가를 신청했으나 거절하더랍니다.
집에서 엄마가 직접 가르칠까도 생각했으나..
마지막 용기를 내어 교육청을 찾아가 몇번을 사정하여 겨우 일반초등학교 입학허가를 받았답니다.
일반학교 입학허가를 받고 엄마는 이 세상을 다 가진 것만큼 기뻤으나..
다훈증후증아들이 일반학교에 다니면서 엄마의 고행은 시작되었답니다.
"행여, 다른아이에게 피해는 주지 않을까?.. 학교에서 바보취급을 받지 않을까?.. 왕따는 당하지 않을까?.."
이런 저런 걱정에 엄마는 아이와 함께 초등학교부터 동행을 했답니다.
결국은 다훈증후증아들때문에 초등학교부터 다시 다닌셈이 된거죠.

아들이 교실에서 공부하는 동안 마음이 놓이지 않아 교실밖에서 창문넘어로 아들을 지켜보다가 선생님이 가르치는 학습을 일일이 체크했다가 집에 와서는 반복학습을 했답니다.

그렇게, 초, 중,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나 아들이 갈만한 대학이 문제였다고 합니다.
다행이도, 아들의 약한 심장을 위해서 어릴때부터 시작한 플릇으로 지방대학에 입학을할 수있게 되었으나, 아들이 다닐학교는 지방이라 학교부근에 방한칸 얻어 생활할려고 하다가 결국은 아들 대학통학에 동행할려고 운전면허증을 따서 소형차를 구입했답니다.

서울에서 천안까지 매일 등학교길에 동반하다보니 엄마도 공부가 하고 싶어지더랍니다.
그래서 수능을 쳤는데, 점수가 의외로 잘 나왔다고 합니다.
초등학교부터 아이와 동행하면서 공부를 했으니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어요.
무턱대고 대학을 입학고보니 아들이 다니는 대학은 천안에 있고, 엄마가 다니는 대학은 서울에 있으니 두개의 대학을 다닐수가 없어서 결국은 엄마는 주간에서 야간으로 옮겨서 낮에는 아들대학으로 저녁에는 엄마가 다니는 대학으로 다녔답니다.

대학다니는 아들학비와 뒷바라지 경비가 만만찮은데 엄마까지 대학을 입학하고 보니 이제는 대학등록금이 문제가 되었답니다.
"젊은이들와 겨뤄 당당하게 대학입학을 했으나 대학교등록비때문에 엄마는 휴학을 할수밖에 없는 심정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라고 할때는 눈가에 이슬이 맺히더군요.

아들은 다행이도 대학생활에 잘 적응하였고, 대학4학년때는 독립심을 길려주고 싶어서 기숙사에 맡겨답니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아들이 걱정스러워 엄마는 매일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 등교를 했느나, 아들은 혼자서도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잘 적응하더랍니다.

아들이 기숙사에서 거주를 하면서 엄마는 방통대에 편입하여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지금 뒤돌아보면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 뿐이예요.
아들이 어릴때 서울병원에서 장기입원시켜 지켜보자고 했을때..
결국은 돈이 없어 퇴원을 시켰거든요..
어쩌면 그때 의사선생님 말을 따랐으면.. 우리아들이 지금보다는 더 좋아졌지 않겠어요.. 돈이 뭔지.. 그때만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진답니다.
결국은 돈때문에 내자식을 바보로 만든 에미입니다."라며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고 말더군요.

엄마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나이 50넘어 대학다닌다고 하면 호강에 뻗쳤다고 하겠지만, 다훈증후증자식가진 어미의 심정을 얼마나 이해하시겠어요.
내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저는 아들과 살지 못했을겁니다.
이렇게라도 정신을 잡아 두는거죠."라고 말하더군요.

짧은 시간에 다훈증후증자식을 둔 엄마와 나눈 대화중 나도 모르게 엄마의 손을 잡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나도 자식을 키우면서 아이가 아플때가 가장 마음이 아팠는데..
자식에게 평생을 따라다니는 다훈증후증자식을 가진 엄마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기숙사생활을하면서 먹는 것을 조절하지 못해서 살이 너무 쪄서 걱정이라고" 이번 여름방학동안 체중조절을 해 줘야 한다면서 엄마는 다훈증후증아들과 또다시 전쟁중이랍니다.

이번에는 바빠서 사진만 올립니다만, 다음에는 플릇연주하는 것을 동영상으로 올려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