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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금줄쳐진 장돗대를 아세요.

예전에는 한 집안의 장맛을 보면 그 집 음식솜씨를 알수 있고, 장돗대를 보면 그 집 주부의 살림솜씨를 알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선지 예전 우리네 엄마들은 장담구는데 정성을 들었습니다.
몇칠전, 한옥마을에 갔더니 서울 팔대가중의 하나로 전해지는 조선 제 25대 철종의 딸인 영혜옹주의 남편 박영효집 뒷편에 자리한 장독대에 금줄쳐진 모습을 보니 어릴때 우리집 장독대가 생각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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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우리 선조들은 일년 중 장 담글때 택일을 하였고 심지어는 고사까지 지내기도 했습니다.

장맛이 나빠지는 것은 귀신이 장을 먼저 먹기 때문이라 보고 이것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장독에 금줄을 치고 또 담근 장 위에 숯이나 고추를 띄웠습니다.
귀신이 숯의 구멍 속에 끼어 들어가 버린다고 보았던 것이며, 고추는 귀신이 싫어하는 붉은 빛깔이고 또 고추가 너무나 맵기 때문에 달아나버린다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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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장맛이 나빠지면 무언가 불길한 징조일 것이라고 보았으니 각 가정의 주부들은 장독대 관리에 정성을 다하였던 것 같습니다.
고기가 있어도 양념이 가미되어야 좋은 요리가 될 수 있듯이 장은 가정에서 음식에 맛을 내는데 가장 많이 쓰이는 기초양념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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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장맛이 좋아야 음식 맛이 좋음은 당연한 일이기에 장독대는 어느 집이고 극진히 위하였습다.
해가 뜨면 뚜껑을 열어놓고 해가 지기 전에 덮었습니다.
요즘은 그런 수고를 덜기 위하여 장독뚜껑이 새로 나왔는데, 한옥마을 장돗대에도 새로 나온 장독뚜껑을 덮어 두었습니다.
 역시, 한옥마을 장독대도 새로운 문화를 받아 들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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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난 후부터 세이레, 즉 21일 동안 금줄을 쳐 두는 것이 자주 봤습니다.
금줄은 장을 새로 담갔을 때에도 사용한다는 것은 한국 음식에서 장은 가장 기본이 되는 양념이므로 그만큼 정성을 들였나 봅니다.
장맛이 그 집안의 음식 맛을 결정하기 때문에 이러한 장이 잘못되지 않고 좋은 맛을 유지하도록 독의 윗부분에 금줄을 치는데 이때는 새끼줄에 숯이나 흰 종이를 끼워 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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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합총서 閨閤叢書≫에서는 장담그기의 택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곧 장 담그는 데에 좋은 날은 병인(丙寅)·정묘(丁卯)·제길신일(諸吉神日)·정일(正日)·우수일(雨水日)·입동일(立冬日)·황도일(黃道日)이고, 삼복(三伏日)에 장을 담그면 벌레가 안 꾀고 해돋기 전에 담그면 벌레가 없다는 것이다.

또 장담그기를 꺼리는 날인 수흔일(水痕日 : 대월의 초일·초칠·십 일, 소월의 초삼·초칠·십이·이십육 일을 말한다.)에 담그면 가시가 꾀고 육신일(六辛日)에 담그면 맛이 사납다는 것이다.

선조대 정유재란 때의 일이다.
어전회의에서 왕이 영변(寧邊)으로 피난갈 것으로 정하고, 백관(百官)이 몰려가려면 장을 미리 준비해야겠다고 했다.
남자안(南子安)이 “신공(申公)을 합장사(合醬使)로 삼아 영변 땅에 먼저 파견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한유천(韓柳川)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신공만은 안됩니다.
신이라는 성은 장담그기를 꺼리는 달인 신일(辛日)과 음이 같으니 신불합장(申不合醬)이라 좋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한다. - 엠파스 백과사전에서 -
장의 중요성은 마침내 이러한 금기까지 낳게 한 것이다.

내가 어릴때, 저의 어머니께서는 장담그는 날 신씨 성을 가진 사람이 방문하면 장맛에 신맛이 난다고 하여 장독대를 북쪽으로 옮겨 장을 담던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우리네 선조들은 장 담는 것에 온갖 정성을 들였던 것 같습니다.

나도 몇년전만 해도 직접 장을 담아 먹었는데, 메주 쓰는것이 번거로워 이웃 할머니로 부터 산 메주가 불량이였는지, 그해 장맛을 실패하면서 고향에 사는 언니가 보내 준 장을 먹습니다.
언제부턴가 도심은 주거형태가 바뀌면서 장돗대에 금줄 메어 놓은 장돗대 보기가 힘들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