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

나이 60에 수능시험을 본 가정주부.

어제 동사무소에 불우이웃돕기 일일찻집이 열렸는데, 모 봉사회에서 봉사를 하시는 회장님께서 대학에 가고 싶어 지난 11월 수능시험을 치르셨다는 말씀에 저는 깜짝 놀랬습니다.
평소에 친하게 지내시는 분인데도 서로 다른단체에서 봉사를 하다보니 자주 만나지 못해서 어제서야 소식을 접하게 되었네요.
"웬 일이야.. 갑짜기 수능 칠 생각을 하셨대요."
"글쎄 말이다..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어"하시며 쑥스러운 듯 말꼬리를 감추시더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 불우이웃돕기에서


그런데, 오늘 낮에 느닷없이 전화가 왔네요.
"어제는 사람이 많아 말을 못했는데, 이 나이가 되고보니 인생이 허무하더라.. 그래서 못다한 공부가 하고 싶어서" 하시며 껄껄 웃으시더군요..

사연은 이러했습니다.
어린나이에 결혼하여 자식 낳아 기르고, 키워서 시집.장가보내고..
손주 어릴때는 손주라도 봐 주느라 정신없이 살았는데..
평생을 바쁘게 살때는 몰랐는데, 갑짜기 여유가 생기자 하루. 하루가 무의미하게 지나가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에 이번에 수능시험을 치르게 되었답니다.

"수능점수는 잘 나왔어요"
"수능치르기 며칠전에 마음 먹었지만, 무조건 부딪쳐보고 싶어서 아무런 준비도 못한채 시험을 쳤다우"
"용기내어 치른 시험이 아까운데, 대학 가셔야죠."
"대학가고 싶은데, 나 같은 늙은이 받아주는 대학이 있을까"
"그럼요, 메스컴에 보니까 간간히 고령주부가 입학했다는 뉴스 본적이 있어요."
"나도 본적이 있어."
"전공은 선택하셨어요."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싶은데.. 지방대학은 안 되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고 싶은데 마땅한 대학 아직 선정하지 못했어."
"용기가 대단하세요. 틀림없이 가실만한 대학이 있을꺼예요."
"어쩌다가 내가 이렇게 나이를 먹었을까..
나도 참 열심히 살았다..
어쩌면 지금 이 시간이 내 평생에 가장 황금시간일지도 몰라.
자식들 키우느라 정신없이 살아 왔는데, 나에게도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이 생길줄 꿈에도 생각 못했어.. 나에게 주어진 황금같은 시간을 무의미하게 허비하기엔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못다한 공부 하고 싶어.. 지금 못하면 죽을때까지 후회할 것 같아."
하시며, 꼭 대학을 가시겠다고 하시네요.
전화통을 붙들고 1시간이상 수다를 떨다가 전화를 끊었지만, 올해 환갑이라는 말씀에 또 한번 놀랬습니다.

나이 60세에 대학을 가시기 위하여 수능시험을 치르셨다는 말씀과 평생을 자식과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사셨는데 이제서야 자기만의 황금시간이 생겼다는 말씀이 내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네요.

저도 나이를 먹을만큼 먹었는데, 나는 저 나이가 되면 어떤 생각을 할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나이 60세에 대학이 가고 싶어 수능시험을 치르셨다는 선배님..
선배님이 가시고 싶은 대학이 꼭 있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