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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십자 봉사

나이 90에 "생애 첫나들이"로 기억하는 치매할머니.

몇칠전 독거어르신 모시고 나들이 나갔을때, 몇몇 어르신들은 거동도 불편하셨지만 치매증세까지 있는  어르신들이 많아 봉사원들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날 참석한 어르신들은 독거노인이라 다들 어려운 삶을 살고 계시지만..
점심시간에 유독 식사를 제대로 못하시는 할머니가 생각나네요.

아침 일찍 나들이길을 나선 탓도 있었지만 마사회직원들 점심시간을 피하느라 오후 1시가 넘어서 어르신께 점심을 드릴수가 있었습니다.
모두들 늦은 점심이라 시장하셨는지 잘 차려진 점심을 개눈 감추듯 빨리도 드시더군요.
그런데, 한 할머니께서는 모두들 식사가 끝났는데도 두서너 숟가락을 드시는 둥 하시다 가만히 앉아 계시더군요.
깡마른체구에 등은 휘어져 곱사등처럼 등뼈가 툭 틔어나온 모습이 안스러워 보여 할머니곁으로 다가가서..
"할머니, 식사하시다 마셨어요. 빨리 드셔야 다른 곳으로 구경가죠"라고 말씀 드렸더니..
그저 빙그레 웃으시며 대답이 없어 다시 "할머니, 식사하세요."라고 했더니..
"응... 다 먹었어."
"에구, 겨우 요만큼 드시고.."
"응.. 많이 먹었어."
"요렇게 작게 먹으니 깡 마를수밖에요."
"너도 말랐어.."
"저는 할머니보다는 덜 말랐어요.. 저는 밥한그릇 다 먹었어요."
"그만 먹을래..밥 많이 먹으면 오래만 살껀데.."
억지로 밥먹으라고 종용을해도 소용이 없더군요.
아예 삶을 포기하신 것 같은 기분이 들더군요.
그렇게 행사가 끝날때까지 잊고있었는데..

나들이 다녀온 날은 나도 피곤해서 일찍 잠이 들었지만, 그 날 수고한 봉사원에게 전화를 하다가 문득 할머니가 생각이 나더군요.
그날 모시고 온 봉사원에게 할머니의 근황을 물어봤습니다.

할머니는 년세가 90을 갓 넘으셨는데 가까운 친적도 없이 홀로사시는 독거어르신입니다.
저의 봉사원이 '어버이결연'을 맺어 이따금 할머니집에 들려서 밑반찬과 빨래와 청소를 해준다고 하더군요.

봉사원이 할머니댁을 찾을때 가끔 치매증세로 "누군데, 나에게 잘해주는거야"라고 말을 건낸다고 하더군요.
거동이 불편하여 복지관에서도 봄나들이가 있지만 할머니를 챙겨주기가 힘들어 엄두도 못내었답니다.
매일마다 엉금어금 기어서 현관앞에 쪼그리고 앉아계시는 모습이 안스러웠고, 이번 나들이는 휠체어와 젊은 봉사원이 도와준다길래 큰맘먹고 나들이에 모시고 나왔다고 하더군요.
그날, 고생한 봉사원에게 할머니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나들이 내내 할머니께서는 승마장에 활짝핀 꽃을 보며.
"좋다. 너무 좋다.."
"할머니 그렇게도 좋으세요."
"응, 너무 좋아.. 이곳이 천국이지.."하시며 하루종일 같은 말만 반복하시더랍니다.
"할머니 젊으셨을때 꽃놀이 다니셨지요. 그때보다 더 좋으세요."
"응, 나 이런곳 처음이야. 너무 좋다."라고 하시더랍니다.

나들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그 할머니가 사시는 동네를 지나게 되어서 할머니 일행은 먼저 차에서 내렸습니다.
그런데, 봉사원의 말이.
나들이 내내 화장실 한번 가시지 않으시더니, 동네에 내리자 말자 화장실이 급하다고 하시더랍니다.
가까운 화장실에서 볼일 보시고 난후 할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나 있잖아.. 오줌싸는게 걱정되어 말도 안마시고 밥도 작게 먹었다"라고 하시더랍니다.
치매와 거동이 불편하셨지만 봉사원에게 불편을 주기 싫어서 물도 안마시고, 밥도 적게 먹었다는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더군요.

나이 90까지 홀로 사신 까닭에 치매증세가 있으시면서도 남에게 피해를 주기 싫었다는 할머니.
나이도 모르고,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시는 할머니..
나이 아흔에 생에 첫 나들이라고 우기시는 할머니..

이따금, 독거노인은 홀로 생을 마감하셔도 이웃은 몰랐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오늘 반더빌트님이 송고한 글에 수입쇠고기를 먹으면 치매증상이 나타난다고 하더군요.
독거어르신들은 돈이 없어 한우는 평생 먹지도 못합니다.
쇠고기가 먹고 싶으면 당연, 값싼 수입쇠고기를 드시겠지요.
홀로 외롭게 사는 세월도 불쌍한데, 마지막 생까지 음지에서 홀로 생을 마감해야 한다니..
할머니를 생각하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돕니다..






나들이에서 몇장 찍은 사진에 할머니모습은 보이지 않는데,
아코디언연주 뒷쪽 운동장에 우두커니 앉아계시는 분이 할머니십니다.
거동이 불편하여 봉사원 혼자서 계단이동을 할수가 없었답니다.

하루종일 할머니를 챙겨주는 봉사원도 그늘에서 쉬지 못했습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물론,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 보내셔야지요.
그렇지만, 가끔 홀로사시는 어르신도 계시나 한번 살펴주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