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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고 싶다

옛날 양반들이 가장 즐겼던 부들, 소세지 닯았어요.

서울 도심인 명동쪽으로 외출했다가 여유시간이 생기면 나는 남산골 한옥마을 찾는다.
회색빌딩숲 속에 갇힌 서울도심에서 한옥마을에만 가면 막혔던 숨통이 탁 트이는 것 같아 자주 찾는지도 모른다.
비오는 오후, 외출했다가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한옥마을에 발걸음이 옮겨졌다..

남산골 한옥마을은 조선시대 양반댁의 가옥을 복원해 두어서 운치가 있지만 그 보다 한옥마을을 지나 남산쪽으로 이어진 숲속을 거닐면 운치가 더 있는 곳이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덥지 않아 맑은 날보다 더 기분이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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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골 한옥마을에는 군데 군데 풍광좋은 곳에 자리한 정자도 운치가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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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골 한옥마을 정상을 돌아 서울천년타임캡술을 뒤로하고 잘 가꾸어진 산책로를 걸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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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이면 남산에서 내려오는 개울소리도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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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 곳곳에 마련해 둔 정자에는 비를 피하러 왔는지 아니면, 더위를 피하러 왔는지 원두막처럼 꾸며놓은 정자에서 놀고있는 행인들의 모습조차도 정겨운 곳이다.
정자옆에 있는 연못은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에 숨 쉬는 것 같다.

남산골 전통정원 내에는 그 동안 훼손되었던 지형을 원형대로 복원하여 남산의 자연식생인 전통 수종을 심었으며, 계곡을 만들어 물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하였고, 또한 정자·연못 등을 복원하여 전통양식의 정원으로 꾸몄다.
남산골 전통정원 내에는 그 동안 훼손되었던 지형을 원형대로 복원하여 남산의 자연식생인 전통 수종을 심었으며, 계곡을 만들어 물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하였고, 또한 정자·연못 등을 복원하여 전통양식의 정원으로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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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장마비에 개울가 바위틈사이로 제 멋대로 자라난 잡풀도 신이 났는지 짙은 녹색을 띈채 유난히 싱싱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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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내가 만난 가장 반가운 풍경은 작은 개울가에 자리잡은 부들무리다.
여름의 호수를 서정적으로 장식하는 수초가 바로 부들이기 때문이다.
비오는 날 부들은 잎과 줄기가 유난히 깨끗하다.
조용한 호수에 그림자를 드리운 부들은 강변의 서정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조금도 구부러짐이 없는 강직한 줄기 끝에 한 마리의 잠자리라도 앉으면 수면에 어리는 잔영과 함께 기막힌 풍경을 이룬다.
동양 정원에서 갈대와 부들이 없다면 연못은 허전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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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연못을 장식하는 식물 중에서 연꽃은 여성을 비유했다면 부들은 당연히 남성을 비유했다.
그래서, 옛날 양반들이 가장 즐겼던 식물이 바로 부들이다.
중국의 고전 《시경(詩經)》에는 부들을 남성에, 연꽃을 여성에 비유하여 정답게 자라고 있는 정경을 노래했다.

저기 저 연못에는 부들과 연꽃이라

고운 님이시여 내 시름 어찌 할거나

자나깨나 님 그리워 일손 놓고 눈물 흘리네

彼澤之陂 流布如何

有美一人 傷如之何

寤寐無爲 涕泗滂?

부들과 연꽃이 피어 있는 연못가에서 한 여인이 멀리 떨어져 있는 남자를 그리워한다는 노래의 일절이다.
부들은 그 생김새가 남성적이고 연꽃의 잎은 여성스럽다는 것에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 가까이 있으면 얼마나 정다운가.
그러나 나는 홀로 있으니 눈물만 흐른다고 그리운 마음을 호소하고 있다.

이처럼 부들은 예로부터 시가(詩歌)에서 남성에 비유되곤 했다.
육상에서 소나무와 대나무를 남성에, 매화와 버들을 여성에 비유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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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들의 줄기는 곧게 자라고 끝에서 갈색을 띤 암꽃이 소시지 모양으로 달린다.
전체에 털이 없어서 매끄럽고, 잎은 두껍고 곧게 펴지며 중앙에서 꽃줄기가 자란다.
잎 아래쪽에서 줄기를 서로 감싸며 마디가 있다.
물에서 살지만 뿌리만 진흙에 박고 있을 뿐 잎과 꽃줄기는 물 밖으로 드러나 있다.
따라서 얕은 연못이나 강에서 자라고 물이 불었다 줄었다 하는 냇가의 진흙에도 넓은 군락을 이룬다.

부들의 암꽃에서 씨가 완전히 익으면 솜털처럼 부풀어오른다. 이것을 모아 방석의 솜 대신 쓸 수 있다.

이규보(李圭報)는 그의 시에서, "술을 마시고 함께 좋은 차까지 맛보며 / 부들방석(蒲團)에 앉으니 말이 필요 없네" 라고 했다. 부들방석은 솜방석보다 부드럽고 푹신했던 것 같다.

한(韓)의 여불위(呂不韋)가 편찬한 《여씨춘추(呂氏春秋)》 존사(尊師) 편에, "삼으로는 신을 삼고 토끼 잡는 그물과 어망을 짜며, 부들과 갈대로 발을 엮는다. (織?? 結?網 嘴蒲葦)"고 했다. 또 사절(士節) 편에는, "제(齊)나라에 북곽소(北廓騷)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부들과 갈대로 자리를 짜고 삼으로 신발을 삼아서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齊有北郭騷者 結?網 嘴蒲葦 織?? 以養其母)" 고 적었다.

부들과 갈대는 줄기로 발을 엮고 잎은 돗자리를 짜는 중요한 소재였음을 알 수 있다. 민초들의 삶이란 풀잎으로 짠 자리를 깔고 갈대 줄기로 지붕을 이는 소박한 것이었다. 그 때문에 검소한 생활을 일컬어 부들로 자리를 짜고 삼으로 신발을 삼는다고 표현한 것 같다.

옛날에는 부들의 솜털을 거두어 병사들의 겨울 방한복으로 사용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서민들은 부들의 솜털을 모아 이불솜 대신 덮고, 부들솜을 넣은 누비옷을 입고 겨울의 혹한을 이겨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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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에서 자라는 부들에는 4종류가 있다. 큰부들, 부들, 애기부들, 좀부들이 그 것이다. 부들은 화서가 크고 굵으며 수꽃이 암꽃의 바로 위에 붙는다. 그에 비해 애기부들은 암꽃이 가늘고 수꽃도 가느다란 것이 암꽃과 사이를 두고 위쪽에 붙는다.

옛날부터 부들 줄기를 갈라 짠 돗자리는 최고급으로 쳤다. 잎도 말려서 자리를 짜거나 발, 멍석을 만들었다. 또 방석, 소쿠리 등을 짜면 오래도록 쓸 수 있고 보푸라기가 생기지 않아 감촉도 좋다.

전한 시대에 씌어진 《예기(禮記)》에는 부들 자리가 왕실에서도 쓰였다는 것을 말해 준다.
"왕이 목욕할 때는 두 가지의 수건을 쓰는데 상체는 부드러운 갈포 수건으로 닦고 아래는 거친 수건을 쓴다. 욕탕에서 나와 부들 돗자리에 서서 가운을 걸치고 몸을 말린다." 라고 목욕할 때의 예절을 자세히 기록해 두었다.

부들은 약으로도 쓰인다. 6∼7월에 익는 부들 꽃가루는 노란 색이고 위쪽 수꽃 화서를 온통 황색으로 뒤덮는다. 수꽃의 꽃가루주머니가 벌어지기 전에 수꽃만을 잘라 비닐 같은 것을 깔고 말리면 노란 꽃가루가 떨어진다. 줄기를 잡고 가볍게 흔들면 많은 꽃가루를 얻을 수 있다. 바람이 없는 날에 작업을 하는 것이 좋고 큰 비닐 봉지에 넣어서 작업을 하면 날아갈 염려가 없다.

한방에서는 이 꽃가루를 포황(蒲黃)이라 한다. 중요 성분으로는 이소 람네틴(Iso rhamnetin), 팔미틴 산, 스테아린 산과 약간의 지방질로 되어 있다.

한방에서는 이뇨제, 지혈제, 통경제, 염증 치료제로 쓴다. 특히 산후 복통, 폐경으로 아랫배가 늘 더부룩할 때 포황이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민간요법으로는 잎을 달여 당뇨병에 쓰고 방부제, 염증 치료제로도 쓰인다. 특히 상처가 곪았을 때 포황을 뿌리면 상처 부위가 빨리 아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봄철 돋아나는 어린 싹을 나물로 했다는 기록도 있다. 중국 동북지방에서는 지금도 요리의 재료로 쓰인다. 그러나 독성이 있으므로 해독 방법을 터득하지 않고 함부로 먹어서는 안된다.

근경은 근경대로 약재로 쓴다. 잎줄기의 아래쪽 흰 부분과 근경을 한데 달여 장출혈, 괴혈병, 사마귀와 종기를 치료하는데 쓴다.

처방으로는 부인병에 부들꽃가루(蒲黃)와 당귀, 생지황 각각 5g에 호박, 작약, 계피 각 2g를 200㎖ 되게 달여 하루 3번씩 나누어 마신다. 바로 포황산(蒲黃散)이다. 포황은 약간의 독성이 있으므로 임산부는 쓸 수 없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부들(蒲黃)은 맛이 달다. 생으로 먹으면 좋지 않고 볶아서 쓰면 몸에 이롭다"고 했다.

부들의 이름은 암꽃 화서의 질감에서 따온 말이다. 부드럽다는 우리말에서 부들이 생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부들, 부드리라고도 부른다. 한자로는 포초(蒲草), 향포(香蒲), 초포황(草蒲黃), 포화(蒲花), 포봉두화(蒲棒頭花), 수납촉화분(水蠟燭花粉) 등이다.

《성경통지(盛京通志)》에는 "부들(香蒲)의 꽃가루는 먹을 수 있고 약으로 쓰는데 포황(蒲黃)이라 한다"고 적었다. 당시에는 꽃가루를 모아 송화처럼 식용으로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옛 문헌만 믿고 함부로 먹으면 위험하다.

이수광(李?光)의 《지봉유설(芝峰類說)》에는 부들과 갈대, 창포를 같은 종류로 보고 있다. "부들에는 세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수초(水草)로서 자리를 만들고, 하나는 포류(蒲柳)로서 화살대를 만든다. 또 하나는 창포(蒼蒲)이니 약으로 쓴다."고 했다. 화살대로 쓸 수 있는 것은 갈대이며, 창포는 지금도 약으로 쓴다. 돗자리를 짜는 수초가 바로 부들이다.

옛날에는 부들의 어린 싹을 나물로 먹었던 같다. 《본초(本草)》에는 "부들의 싹을 향포(香蒲) 또는 감포(甘蒲)라 한다. 이른봄에 나는 어린 싹을 씹으면 부드럽고 달착지근하다. 맛이 매우 좋아서 겉절이를 담가 먹고 젓갈에 찍어 먹는다"고 했다. 또 예로부터 소금에 절인 부들 싹을 포저(蒲?)라 하여 봄철 미각으로 즐겼다.

부들의 꽃은 여름철 꽃꽂이 소재로 널리 쓰인다. 독특한 아름다움과 직선의 시원스런 멋을 살린 꽃꽂이 작품은 소재 자체가 현대적 감각을 지니고 있어 최근에 인기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