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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고향에서 부모님 제사 지내는 오빠부부.

오늘이 음력으로 칠월 칠석, 30년전 돌아가신 우리 친정엄마 제삿날입니다.
어제 모처럼 어머니제사도 참석할 겸 고향에 사는 언니와 통화를 했습니다.
"언니 잘 지냈어"
"그래, 잘 지냈다.. 엄마제사때문에 전화했구나."
"그럼, 효녀는 아니지만 제삿날만은 챙겨야지."
"언제 올껀데.."
"밤제사 지내니까.. 서울에서 천천히 출발할려고."
"그래라. 그렇찮아도 올케가 그런던데, 요즘 휴가철이라 손님이 많아서 무지 바쁟고 하더라. 부산에서 제삿상 차릴준비 해서 올라 온다고 하더라."
"그렇구나. 부산에 거주하면서 고향에서 제사 지내는 것만으로도 우리들은 고맙지 뭐."
"맞아, 다른 건 몰라도 고향에서 시부모제사상 차리는 올케가 고맙지 뭐. 그렇찮아도 서울아가씨 오냐고 묻더라.. 음식 넉넉하게 준비 해 온다고 전화가 왔어. 더운데, 서둘지 말고 천천히 올라오너라."
"알았어. 오후 3시경 출발할께"
"그래, 조심해서 내려 오너라."

저의 오빠네 부부는 고향에서 살다가 오빠가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퇴임을 하자 올케는 친정엄마께서 운영하시던 식당을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습니다.
오빠와 나이차이가 많고 하나뿐인 조카도 장성하여 객지에서 생활을 하자 집에서 놀기가 심심했던지 몇년전부터 부산 내려가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몇년간 혼자 사시는 사돈양반, 몸이 쇠약해져서 식당 처분할때까지 도와준다고 고향을 떠났었는데, 장사가 잘되자 올케는 부산에 자리를 잡고 삽니다.
고향에 있는 집도 처분하지 않은채 그대로 두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올케에게 고마운 것이 있습니다.

부산에서 자리를 잡은지 몇해가 지났지만 집안 제사는 물론, 명절은 고향에서 와서 보냅니다.
물론, 고향에서 살던 집은 팔지 않은채 그대로 두고 있습니다.

지난 5월 조카결혼식때 친정에 갔을때.
"올케, 부산에서 계속 장사할껀가요."
"그래요. 처음에는 친정엄마 장사 정리하는 것 도와 줄려고 갔었는데 장사가 잘 되어서 팔기가 아까워 내가 인수했어요."
"어머, 그래요. 그럼 고향집 팔고 부산으로 이사 가겠네요."
"아니요, 고향집은 그대로 둘꺼예요."
"왜요.. 이젠 아버지도 돌아가셨고, 조카도 결혼하여 대구에서 살껀데.. 이젠 아무도 살지않는 빈집이잖아요."
"저야 친정어머니와 함께 살면 좋지요. 그런데, 당신오빠께서는 절대로 고향을 떠나지 않겠답니다."
"그랬군요. 그럼 올케가 힘들잖아요. 모두들 대도시로 떠나고 싶어하는데."
"저도 나이가 들어 친정가서 살아보니 정말 좋다군요. 제 어릴때 추억이 그대로 남아있고, 동창들도 자주 만나고.. 어째든 고향이라는 자체가 참 좋더군요. 제가 부산이 좋다고 고향을 떠나면 아가씨들은 추억이 없어지잖아요."
"그렇죠. 비록 결혼하여 고향을 떠났지만 내 고향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리더군요. 자주 오고 싶지만 내집일 챙기느라 자주 못와서 미안해요."
"그런 생각하지 마세요. 어차피 고향에는 시부모님 산소도 있고, 저나름대로 오래 살았기에 정이 들었어요. 저도 언젠가는 장사 정리하고 다시 오빠의 고향으로 돌아 와서 살께예요."

점점 자녀가 도시에서 직장에 자리를 잡아 살다보면 고향을 등지는 가정이 늘어만 갑니다.
년로하신 부모님, 고향에 살지만 자식이 명절제사 지내러 오는 것이 불편할까봐 고향을 떠나 자식이 사는 곳에서 제사를 모시는 가정이 늘어만 가더군요.
그런데, 우리집 올케는 타향에서 자리잡고 살면서도 고향에서 시부모님제사를 모십니다.

살면서 이런, 저런일로 올케와 마음 상한 일도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죠.
어쨌던, 우리는 시누이와 올케사이잖아요.
허지만, 현재 부산에 거주하면서 시댁고향에서 제사를 챙기는 올케.
갑짜기 고맙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