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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십자 봉사

생을 포기한 할아버지의 기막힌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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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요일 저의 봉사회에서 관내 독거노인께 수의(장수복)을 53벌 지어서 나누어 드리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이 행사는 저의 봉사회에서 몇년째 계속하고 있는 행사입니다.
사실, 수의는 고가의 제품이라 독거노인들에게는 미리 장만한다는 것은 쉬은 일이 아니기에 저의 봉사회에서 중구청과 적십자봉사관의 도움으로 마련할 수가 있었습니다.

행사가 끝나고 수의 드린 분께 수의관리에 대하여 주의사항도 알려드릴 겸 미리 파악하지 못한 생활상을 파악하여 도움이라도 드릴 것이 있나 하는 마음에서 전화를 드리거나 찾아 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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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수의를 받으시는 분과 나들이 나오신분들입니다.


수의를 받은 독거노인 중에 우리집 부근에 사시는 분이 계시더군요.
몇년전만 해도 길에서 만나면 늘, 깨끗하고 신사양반이였는데 몇년사이 몰라보게 수척하시더군요.
"안녕하세요, 저는 적십자봉사회 회장 00입니다. 수의는 잘 받으셨어요."
"아이쿠, 그럼요 내 생애 가장 소중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니예요. 더 좋은 것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얼마전까지는 멋지게 하고 다니셨잖아요. 그런데, 많이 수척해지셨어요."
"나이를 먹으니 아픈곳만 생기고, 지금 제 실정은 거처할 방한칸 없습니다. 내 신세가 이렇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하고 살았습니다."
"예전에 할머니 계셨는데.. 할머니는요."
"아.. 녜, 우리 집사람은 미국에 거주하고 저와 같이 사는 분은 먼친척 누님입니다. 지금 누님은 방에서 잠들었어요."
"녜, 누님이라구요."
"녜, 사연이 길어요. 나도 젊었을때는 좋은 직장까지 다녔는데... 사람의 운명은 한치앞도 내다 볼 수 없다는 말이 맞는 말입니다."
긴 한숨을 밷으시며 천천히 말을 이으시더군요.

현재 할아버지는 77세로 가족은 미국에 거주하며, 현재 거주하는 곳은 먼친척 누님집이랍니다.친척누님도 혼자 사는데 고령으로 치매가 걸려 사흘이 멀다 않고 대소변 수발까지 하시면서 누님곁에서 새우잠 자고 끼니는 무료급식소에서 한루 두끼  해결하신다고 합니다.

평생을 별탈없이 사셨는데, 어느날 부인이 원인모를 희귀병인 근육병에 걸려 국내에서 치료하다가 미국에 거주하는 자식에게 가서 치료받는것이 소원이라는 부인을 미국으로 보내고 남은 재산으로 병원비 보내고, 끝내는거처하던 방보증금마저 빼서 보내주었는데..
끝내는, 믿었던 자식마저 근육병환자로 소식이 끊어진지 몇해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자식과 가족이야기가 나오자 "가족이 보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가고..나는 이미 생을 포기했어.. 전생에 내가 얼마나 못된 죄를 지었을까. 내 업보라면 당연히 받아 들여야지요.."

"미국에 있는 처와 자식 모두, 근육병으로 팔,다리를 움직이지 못한답니다... 요즘들어 내 몸도 아지만, 먼 이국땅에서 죽어가는 가족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병원도 가기도 싫어."
"왜요, 병원비때문에 못가시는 건가요."
"아닙니다. 작년부터 기초생활보호자로 등록되어 병원비도 무료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내가 더 살고 싶지 않아요."
"사는 동안만이라도 아픈데는 없으셔야지요."
" 내 몸은 내가 압니다. 내가 생각해도 얼마남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얼마전 대학병원에 가서 시체기증 신청도 하고 왔어요.
아내와 자식이 움직이지 못하고 먼 이국땅에서 죽어가는데 목숨이 붙어있다고 급식소에서 꾸역 꾸역 먹고있는 나자신이 원망스러워요.
거울에 비친 내모습을 보면 처량하지요.
이 몸으로 더 살면 뭣하겠소.
남에게 피해만 줄뿐이지요."

나는 할아버지댁 부엌 겸 거실 현관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중 T.V에서 촛불집회가 나오자 물끄러미 쳐다보시더니..
"나도 젊었을때 데모에도 참가하고 했는데.. 그 시절에는 희망이 있었지.. 희망이 있다는 자체가 바로 살아있다는 증거지.."하시며 혼자서 중얼거리시더니..
"에구, 늙은이 넔두리 들어줘서 고마워요. 내 가는 마지막 옷까지 마련해 주었으니 지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그럼 잘 가시요."하시며 긴 한숨을 내시면서 T.V쪽으로 고개를 돌리시더군요.
할아버지와 이야기 나누다 보니 사연이 기가 막혀 어떤말을 해야 위로가 될지 생각이 나지 않고 제가 멍해집니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희망인 자식과 아내가 먼 이국땅에서 희귀병으로 죽어가는 것을 가슴에 묻어야만 하는 기막힌 사연.
살아있다는 희망마저 포기하신 할아버지.
살기가 힘들다고 난리들입니다만, 할아버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던 길에 곰곰히 생각해봤습니다.
과연, 희망이란 뭘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