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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고 싶다

유리창이 특이한 궁궐, 집옥재.

경복궁을 탐방하다 보면 취향교를 지나  고종왕비 명성왕후가 일본인의 손에 의해 무참히 시해된 장소 건청궁 옆에 작은 궁궐이 보입니다.
그런데, 궁궐을 을 보면 왠지 중국에서 볼 수있는 건물로 조선시대 건축물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나더군요.


 이 건축물의 명칭은 집옥재로 고종 즉위 13년이 되는 1876년에 경복궁에 큰 화제가 일어마자 창덕궁에 살던 고종(고종 25년, 1888) 다시 경복궁 건천궁으로 돌아와 고종 1881년 창덕궁에 있는 함년전을 지으면서 서쪽 별당에 협길당, 북쪽에는 집옥재를 부속건물로 지었는데 고종이 경복궁으로 돌아 오면서 이 자리로 옮겨 온 것이랍니다.

집옥재의 건축형식은 중국식으로 그 당시 신식건물 3채로 건물은 각기 다른이름을 갖고 있지만 건물전체가 연결되는 구조를 갖고 있으며 고종은 왕의 초상화 봉안장소와 서재 겸 외국 사신 접견장으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용마루의 용도 중국식이고 현판도 중국식으로 중국 송나라 명필인 미불(米連, 字 元章)의 글씨를 집자(集字)하여 중국풍으로 만든 것도 이런 연유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집옥재의 꽃살의 문양도 중국식인지 다른 궁궐에서는 볼 수없는 문양입니다.

팔우정의 2층 난간은 계자각난간인데 거기에 궁판이 2개이며 문양은 안상문양이나 안상 속의 무늬는 왠지 낯설어 보입니다.

집옥재의 단청은 비교적 푸른 색이 많이 들어갔으며 단청은 주화머리초와 연화머리초가 섞여 있는 것같았으며 건문 내부의 문양은 중국식인지 특이하였고 천정의 청룡인지 주작인지 문양도 특이합니다.


방문의 궁판에는 문양이 있었는데 중국의 궁궐과 비슷합니다.
또한, 창문을 여닫는 곳에는 창문 밑에 나무로 된 꽃문양이 화려하고 색채가 요란합니다.

뒷벽의 창문 모양도 아치형 문이 독특하네요.

그런데, 자세히 보면 창문마다 유리창이 있습니다.
나는 신기해서 문화재 해설자에게 물어 봤습니다.
"창문에 유리창이 있어요. 최근에 다시 복원했나요."
"아닙니다, 유리창은 건물을 지을때부터 있었어요. 그 당시에 외국문물을 받아 들이는 던 시대라서 최신식으로 지은 건물입니다."라고 하더군요.
조선시대 궁전에 유리창이 있다는 자체가 신기하더군요.


또한, 이 건축물은 건천궁과 함께 한국의 최초 전기가 들어 온 건물입니다.

유리창이 있고 건축양식이 중국풍으로 지어진 집옥재는 우리나라 최초로 외국문물을 받아 들어 지어진 건축물로 고종은 1896년 러시아 공관으로 거처를 옮길 때까지 건천궁에 기거하며 이 곳에서 책을 읽고 외국 사신들을 맞이하며 지냈는데, 고종 30년(1893) 한 해에만 영국, 일본, 오스트리라 등의 외국 공사들을 다섯 차례나 맞이하기도 했던 격동기의 역사가 서린 건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