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1/11 - [행복] - 손주 대학 졸업할때까지는 살아야 하시는 할머니.
지난겨울 관내 엄마없는 어린이들과 뮤지컬 "과학 이야기" 관람때
할머니의 손주도 참석했네요.
토요일 오후 골목어귀를 돌아 서는데 반가운 할머니께서 내 손을 잡으시며
"요즘 얼굴보기가 힘들어요. 잘 지내는지요"
"녜, 잘 지내고 있어요. 그런데 할머니 얼굴이 많이 상하셨어요. 어디가 편찮으세요"
"글쎄, 건강은 장담하고 살았었는데 올 가을부터 자꾸 아프네"
"건강하셔야지 자주 아프시면 어쩐대요. 손주때문이라도 오래 사셔야 하는데"
"지금 죽어도 무슨 미련이 있겠냐만은 손주때문에 눈도 못감제. 내 손주 불쌍해서라고 얼른 일어나야 하는데"
할머니께서는 젊어서 청상과부가 되어 아들하나 훌륭하게 키우는 낙으로 사신 분이다.
어려서부터 아들은 남달리 총명하여 오지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히고 서울의 최고 명문대학에 입학하면서 아들 뒷바라지 한다고 서울로 상경하셨답니다.
아들 뒷바라지 한다고 돈 되는 논은 팔고 남은 밭은 봄부터 시골 내려가셔서 농사지어 목돈 만들어 아들 등록금 마련하고 농번기에는 서울에서 빌딩청소며 식당일을 하면서 알뜰히 사셨답니다.
그 덕에 아들은 대학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하고 결혼하여 평범하게 사셨는데..
어느 날 아들은 직장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승승장구하여 번창하여 할머니의 자랑이셨는데..
그리고 몇년후 결국은 경제위기와 함께 아들 소식은 끊어지더니, 결국은 사업실패로 며느리와 손주는 소식없고 자살한 아들의 싸늘한 시신만 할머니 곁으로 돌아왔답니다.
죽은 아들 가슴에 묻고 손주를 몇년 찾아다녔는데, 며느리는 소식이 없고 손주는 모 절집에 돌중이 되어 있더랍니다.
젊어서 혼신의 힘을 다하여 키운 자식은 가슴에 묻고, 아들이 남긴 피붙이 손주 키우기엔 년세가 많으신 할머니.
할머니는 공공근로로 동네 골목청소하시면서 손주와 사십니다.
다행히 동사무소 차상세대로 구분이 되어 어린이집 보육료면제와 함께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동사무소에서 운영하는 공부방에서 방과후 공부를 하는데 아빠 닮아서인지 학교에서 우등생입니다.
할머니손주사랑이 어찌나 지극하신지 동네에도 소문이 자자할 정도입니다.
"처음 손주녀식 만났을때 죽도 못 먹은 아이처럼 비싹 말랐더니, 요즘은 밥도 잘 먹고 할머니 곁에서 잔심부름도 잘해..
참, 이상도 하지.. 죽을 아들 놈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는 듯이 아프지만 이 녀석이라도 나에게 보내준 것으로 만족해야제..
아들 키울때 보다 손주놈 키우때가 더 재미나네.. 손주녀석이 기특하기만 해"
"아들 키울때는 아들이 대학생이라서 짬짬이 시골 내려가서 농사도 지었는데, 손주녀식이 잠시도 할미곁을 떠나질 않으려고 하니 농사일도 못해"
"몸이 아파서 공공근로 일도 못하고 손주 키울일이 막막하네"
하시며 울먹이시네요.
이제 할머니손주는 초등학교 5학년.
앞으로 손주 대학가려면 10년은 남았네요.
세상에 피붙이라고는 할머니 한분인데, 할머니께서 건강하고 오래 오래 사셔야 하는데...
이제 찬 바람이 불어 겨울이 오나 봅니다.
이번 겨울에는 손주랑 맛난것 많이 드시고 내년 봄에는 건강한 몸으로 만나셔야 해요.
손주 장가보내고 증손주 재롱도 보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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