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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베어진 채 밑 둥치만 남은 안동 시민의 ‘神木’ 300년 된 회화나무.

친정언니 아들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안동에 갔다가, 시간이 남아서 낙동강변을 거닐던 중 안동댑입구를 지나 가는데 도로중간에 잘라진 나무에 링겔이 꽂혀있더군요.


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 봤더니, 나무의 윗둥치는 톱으로 베어진 자욱과 함께 꺽어진 채 남은 둥치에는 링겔을 꽂고 있더군요.

잘라진 채 링겔을 꽂은 채 도로 중간에 서있는 나무가 있는 곳은 안동댐으로 들어 가는 진입가 있습니다.
그 당시(1976년), 안동댐을 만들면서 진입로를 낼때 이 나무를 관통해야 하기 때문에 나무를 베어내야 하는데, 이 나무를 베어내려던 일꾼이 횡사하고 동원된 포클레인은 삽날이 두동강 났다고 소문이 전해 지면서 이 나무는 안동시민들의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안동댐 도로공사측에서는 "이 나무를 베는 사람에게 특별상금까지 내 걸었으나 아무도 나무를 베겠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안동댐 진입로는 이 나무를 피해서 우회전해서 도로가 생겼습니다.
결국, 이 나무는 그대로 남겨진 채 도로가 뚫렸으며 이후 교통방해 등으로 이 나무를 베어내려다 죽임을 당했다는 등 온갖 소문이 나돌아 시민들은 신목(神木)으로 여기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 왔습니다.
가끔 안동을 찾을 때마다 이 나무는 늘,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가 봤더니 안동시민들이 신성하게 여겼던 이 나무는 베어진 채 밑둥치만 남아 링겔을 꽂은 채 쓸쓸하게 서 있더군요.


누가 두고 갔는지, 베어진 나무에는 노란 조화가 있습니다.


안동 시민들이 신성하게 여겼던 나무 옆에는 안동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길이 있고, 기찻길 옆에는 임청각이라는 고가옥도 있습니다.

임청각은 안동의 고성 이씨 종택으로 원래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인 석주 이상룡(1858~1932)선생이 살던 고성 이씨 가문의 집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원래 이 나무는 임청각 앞뜰에 심어진 나무였는데, 임청각 앞마당을 관통해서 중앙선 철길이 나면서 이 나무는 낙동강 강가에서 자랐던 나무였습니다.


지금은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인 석주 이상룡(1858~1932)선생이 살던 고성 이씨 종택으로 밝혀졌지만, 내가 자랄때는 도깨비가 지은 집으로 알려졌습니다.


철길 옆에 있는 임청각은 지방에서는 흔히 볼 수없는 아흔 아곱칸의 고택.
하루 밤사이, 도깨비가 지었다고 알려졌고 안동댐 진입로를 낼 때 이 나무를 벨려고 한 사람이 횡사했다는 소문과 함께 임청각과 이 나무는 두려움의 대상이였습니다.


그렇게, 나의 추억이 담긴 수령 300여년된 나무는 베어지고 밑 둥치만 남은 채 링겔을 꽂고 도로 한복판에 쓸쓸히 서 있습니다.

일제시대 일본이 지맥을 끊기 위해 중앙선 철도를 집을 가로질러 내는 바람에 집 일부는 헐렸지만 이 나무는 당시 화를 면했던 회화나무.
누가 무슨 연유로 잘랐는지는 모르겠지만, 몇백년동안 온갖 서러움을 견뎌 낸 나무의 절단사건 이후 시민들은 막걸리통과 꽃다발을 그루터기에 갖다 놓고 기도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날마다 끊이질 않는다고 합니다. 

오랜만에 찾은 안동, 안동댐 진입로에 잘려진 채 밑둥치만 나무를 바라다 보니 왠지 허전한 마음부터 생기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