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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고 싶다

남산골 한옥마을 굴뚝과 경복궁 교태전 굴뚝.

우리나라는 전통주택을 둘러보면 난방구조는 온돌형식으로 세계적으로 매우 독특한 문화입니다.
물론 중국의 동북부지방에도 온돌과 유사한 바닥난방 방식을 취하는 시설이 꽤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방의 일부분만 침상처럼 높게하여 구들 골을 축조하고 방안에서 아궁이에 불을 지펴 높은 바닥을 덥게 하는데, 낮에는 걸터앉기도 하며 밤에는 잠자는 침대형식으로 사용하지만, 우리나라 온돌방은 방바닥 전체를 난방하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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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방문화가 발달하면서 한옥의 굴뚝은 건축물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거기에도 다른 건축물처럼 표정이 있고 다양한 느낌과 정감을 불러냅니다.

남산골 한옥마을에는 조선시대 양반들의 가옥들을 복원시켜 둔 가옥이 몇채있는데 그 중에서 순정효황후 윤씨친가와 부마도위 박영효가옥, 오위장 김춘영가옥입구 있는 굴뚝이 눈에 띕니다.
100년전에 지어진 건물인데 가옥입구에 마련된 굴뚝을 보면 굴뚝에 들인 옛선조들의 장인정신을 엿 볼수가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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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굴뚝은 순정효황후 윤씨친가에 있는 굴뚝입니다.
이 가옥은 조선 제27대 순종(純宗)의 황후(皇后)인 윤씨가 열세 살에 동궁(東宮)의 계비(繼妃)로 책봉되기 전까지 살았다고 하는 집을 복원해 놓은 것인데, 건축양식으로 볼 때 1907년 순종의 즉위로 윤씨가 황후가 된 이후인 1910년대 부원군(府院君)의 궁(宮) 집으로 새롭게 중건(重建)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더군요.
굴뚝의 특징은 사괴석(四塊石)과 전돌(塼石)을 섬세하게 사용하여 굴뚝지붕은 둥근 아치형으로 만들어 빗물받이까지 만들어 두었더군요.
굴뚝이 어찌나 정교하고 튼튼하게 만들어졌는지 한눈에 봐도 알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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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굴뚝은  조선말기 오위장을 지낸 김춘영집입구에 있는 굴뚝입니다.
이집은  1890년대 지은 집으로 종로구 삼청동
에 있던 것을 남산골 한옥마을에 이전, 복원하였습니다.
 
즉 길가에 면한 부분에 사괴석(四塊石)과 전돌(塼石)을 사용하여 화방벽(火防壁)을 쌓아 집의 격조를 더 높였으며, 그의 생가에는 중화당이란 사랑채가 있는데 처마 밑으로 굴뚝을 길쭉하게 만들고 다시 꺽어 위로 뽑고 있습니다.
그리고, 굴뚝의 하부는 잡돌로 구성시켰고 중상부는 기왓장에 진흙을 한 켜씩 덮고 쌓아 올렸다. 맨위는 비가 스며들지 못하게 기와 지붕을 얹었으며 양옆으로 배가구멍을 뚫어놓은 깔끔한 굴뚝입니다.
이와 같이 집채에 붙여서 굴뚝을 두지 않음으로써 외관적으로 볼 때 연기의 그을음을 방지하고 또한 기능적으로 연기가 더 잘 빠지게 하는 이중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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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경복궁 교태전에 있는 굴뚝입니다.
교태전
굴뚝은 교태전 담장과 함께 자리잡고 있습니다.
굴뚝의 벽면에는 각양각색의 길상무늬와 십장생들을 부조로 장식되어 눈에 띄게 화려하지 않지만 굴뚝 위를 자세히 보면 작은 집형태의 모습이 앙증맞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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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경복궁 교태전 뒷뜰, 아미산기슭에 세워진 굴뚝입니다.
교태전 뒷뜰에 있는 굴뚝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저는 처음에 탑인 줄 알았는데 굴뚝이랍니다.
이 굴뚝은 흙을 구워 만든 전돌로 만들어져 굴뚝전각에는 십장생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굴뚝들이 교태전에서 떨어진 아미산에 있는 것이 신기합니다.
교태전의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연기가 뒷마당 땅 밑에 만들어진 연도를 따라 자연스럽게 아미산굴뚝위로 피어오른다고 합니다.
교태전아궁이에서 불을 지피면 굴뚝에서 피어났을 연기들이 아미산 굴뚝에서 피어 오르는 연기는 안개에 둘러싸인 듯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했겠다는 생각이 들게끔 합니다.

저는 서울에 살면서 남산골 한옥마을과 경복궁등..
자주 가는 곳입니다.
갈때마다 그곳이 그곳이다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렇게 집주위를 자세히 살펴보면 재미있는 곳이 참 많을 뿐더러 배울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가옥에 없어서는 안 될 건축물이지만 지금껏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굴뚝.
이처럼 장식건축과는 거리가 있었던 굴뚝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선조들의 솜씨에 감탄과 놀라움을 동시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