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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아픈다리로 새벽만 되면 비둘기 모이 주는 할머니.

우리집 건너편 공원으로 들어 가는 길목에는 새벽만 되면 비둘기가 모이 먹는 모습을 매일 볼 수가 있습니다.
이 곳은 동네 공원 들어가는 입구로 공원주위에 사는 주민들이 쓰레기를 모아 두는 곳으로 평소에 비둘기떼가 쓰레기봉지속에 들어있는 음식물 쓰레기를 먹는 장면이 자주 보였는데, 요즘 들어 낮시간에는 비둘기를 볼 수가 없고 새벽이면 비둘기 무리를 매일 볼 수가 있더군요.
누가 비둘기모이를 줄까 궁금했는데, 며칠전 새벽행사가 있어 일찍 일어나 부엌창으로 내려다 봤더니 비둘기가 모이를 먹고있는데, 비둘기 옆에는 사람이 희미하게 보이더군요.

요즘들어 새벽마다 안개현상때문에 시야가 흐려 비둘기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의 형태만 보일뿐 누구인지 구분이 가지 않더군요.

그런데, 어제 남산에서 열린 남산걷기대회에 참여하기 위해서 새벽에 집앞에서 택시를 잡으려고 하는데, 골목귀퉁이에 사람이 보이더군요.


가까이 가서 보니 이웃에 사시는 할머니였습니다.

평소에 자주 만나는 할머니라 반가워서 "할머니 여기서 뭐하세요."
"으응.. 비둘기 모이 줄려고"
"새벽마다 비둘기 모이 준 분이 할머니셨어요."
"으으 나였어. 새벽에 일찍 잠이 깼어도 할일이 없잖아."
"일찍 일어나셔도 그렇지, 새벽공기가 차고 다리도 아픈데 비둘기 모이 주려고 매일 나오셨어요."
"다리가 아파서 그만두고 싶은데, 비둘기들이 내가 모이 주는 것을 아나 봐.. 이 시간만 되면 나를 기다리잖아."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하늘을 쳐다 봤더니 전깃줄에 비둘기가 새까맣게 앉아 있더군요.
"전봇대에 앉아 있는 비둘기, 내가 길건너 가기를 기다리고 있어.. 말 못하는 새들이지만 신기하지. 비둘기 배 고플라 얼릉 길 건너 가서 줘야하는데, 날씨가 쌀쌀해지자 다리가 말을 듣지 않네."

전봇대에 앉은 비둘기를 보자 할머니께서는 힘들게 일어나시더니 몇 발자욱 걷더니 이내 바닥에 주저앉고 맙니다.
할머니는 아기유모차가 없으면 한발짝도 걷지 못합니다.
"할머니 제가 길건너까지 모셔드릴까요."
"참, 00엄마는 이 새벽에 어딜갈려고 나왔어."
"녜, 오늘 남산에서 걷기대회가 있어요. 저의 봉사화에서 커피봉사때문에 일찍 나가야 해요."
"그랬구나. 바쁜데 가 봐.. 나 혼자 천천히 건너 갈꺼야."
"제가 모셔다 드릴께요."
"아니야.. 내가 천천히 걸어갈꺼야."

새벽마다 비둘기 모이를 주는 할머니께서는 자식도 없이 혼자사는 독거할머니입니다.
혼자 살면서 길거리에 버려진 개와 길고양이를 키워 동네에서 개엄마로 통하시던 분이셨습니다.
예전에는 집안에서 버려진 개를 20마리정도 키워서 동네로부터 쫒겨날 지경에 이른적이 있습니다.
동네주민들이 냄새가 난다고 민원이 끊어지질 않자 할머니께서는 몸이 아픈 개 두마리만 두고 나머지는 포천 개 키우는 곳으로 보냈습니다.

키우던 개를 포천으로 보내고 난 후 할머니께서는 개사료를 사서 포천으로 가시던 분이셨습니다.
그렇게 동물을 유난히 사랑하던 할머니셨습니다.

새벽공기가 제법 쌀쌀한데, 할머니는 길 건너 공원입구에 앉아 비둘기에게 모이를 줍니다. 

이른 새벽이라 주위는 캄캄합니다.

새벽마다 비둘기 모이를 주는 할머니는 생활보호대상자로 동사무소에서 매달 30여만원 돈으로 생활을 합니다.
포천 개사료 사주고, 비둘기 모이 사고나면 생활은 어떻게 하냐고 여쭈어 봤습니다.
"동사무소에서 간간히 주는 쌀이면 되고, 가끔 김치담구어 갔다 주는 것 먹으면 돼."
"나이 들수록 잘 먹어야 하잖아요. 요즘들어 할머니 다리가 더 심한 것 같아 보이는데 병원은 다니세요."
"병원에 가도 차도가 없어..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요즘들어 다리가 더 아프네. 참, 지난 번 사준 호주산 사골 좀 사 줄래."
"녜, 사 드리고 말구요. 봉사관이 마장동이 있어 자주 가요."
"지난 번 사준 사골 남은 것 고아서 마셨더니 좀 나은 것 같어."
"뭐라구요.. 지난 여름에 사드린 사골 여태 드셨어요."
"혼자 먹으니 줄지도 않아."
말씀은 그렇게 해도 분명 할머니께서는 당신 먹는 것이 아까워서 지난 여름 사드린 사골을 마음껏 드시지 못하신 겁니다.

새벽마다 비둘기 모이를 주러 나오시는 할머니.
매일마다 할머니를 기다리는 비둘기.
어쩌면 할머니는 사는 것이 너무 외로워 비둘기와 정을 나누러 나오시는 것 아닐까요.